유아텃밭교육의 이해

유아 텃밭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식물이 자라는 속도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

해님 2026. 9. 13. 12:00

“선생님, 이거 내일 먹어요?”

상추 모종을 심던 만 3세 아이가 물었습니다.

 

“우리 상추 잘 길러서 엄마, 아빠랑 같이 먹어보자.”

라는 말에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일’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추를 심고 바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잘 자라도록 돌보면서 적어도 3주 정도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상추가 먹을 만큼 자라려면 20밤 정도를 자면서 기다려야 해. 그동안 물도 주고 잘 자라는지 살펴보자.”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한참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20밤’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아마 그때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텃밭에서 매일 상추의 모습을 살펴보고 물을 주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 나름의 방식으로 ‘기다린다는 것’을 조금씩 터득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유아 텃밭교육에서의 기다림입니다.

단순히 아이에게 “참고 기다려야 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면서 기다림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유아 텃밭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유아 텃밭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식물은 아이가 원하는 속도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때때로 아주 짧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길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만 3세 정도의 어린 유아에게 ‘3주 후’, ‘한 달 후’와 같은 시간 개념은 아직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씨앗이나 모종을 심었으면 곧바로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언제 나와요?”

“언제 먹어요?”

“왜 아직 안 자랐어요?”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텃밭의 식물은 아이의 기대에 맞춰 성장하지 않습니다.

 

물을 주었다고 다음 날 열매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매일 바라본다고 더 빨리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씨앗은 흙 속에서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싹은 조금씩 자라며 잎을 만들어 냅니다. 식물에 따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모두 다릅니다.

 

유아는 이 과정을 통해 자연에는 자연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선생님, 아직도 씨예요. 씨가 죽은 거 아녜요?”

당근 씨앗을 심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이들과 당근 씨앗을 텃밭에 살살 뿌리고 흙을 살짝 덮어주었습니다.

 

3~4일이 지나자 한 아이가 텃밭 흙을 손으로 살살 헤쳐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땅 위에서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아직도 씨예요. 씨가 죽은 거 아녜요?”

아이에게는 당근 씨앗을 심었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으니 씨앗이 그대로 있거나 혹은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조금 더 기다려보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약 열흘쯤 지나자 흙 위에서 연두색 싹이 뾰족뾰족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밥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키가 크나 보다. 어쩜 예쁘기도 해라.”

아이들은 누구보다 반가워했습니다.

“예쁘다.”

아이들이 작은 당근 싹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던 흙에서 작은 생명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당근의 성장에 대한 지식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계속 관찰합니다

텃밭에서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관찰은 더욱 세밀해집니다.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새 잎이 나왔는지 찾아보고, 줄기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합니다.

특히 식물이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그 작은 변화도 쉽게 발견합니다.

 

애플수박을 키울 때에는 이런 모습이 더욱 재미있게 나타났습니다.

애플수박은 덩굴을 길게 뻗으며 자랍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 어느새 아이들의 키를 훌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줄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매어준 줄기를 따라 덩굴이 뻗어가는데, 덩굴 끝에 달린 작은 ‘손’처럼 생긴 부분이 주변의 무엇인가를 붙잡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월요일에는 아이들이 성장의 변화를 크게 느낍니다.

“와! 이렇게 컸네?”

“어? 선생님, 여기 가지를 붙잡고 있어요.”

금요일에 보았던 모습과 월요일의 모습이 달라져 있으니 아이들이 신기해합니다.

덩굴이 어디를 붙잡고 올라가는지 찾아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가 됩니다.

 

이처럼 텃밭에서의 기다림은 관찰과 연결됩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식물이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 변화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식물의 성장을 돕는 것도 기다림의 한 부분입니다. 

애플수박 덩굴이 주변의 가지를 붙잡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머, 안 돼. 수박아. 네가 그렇게 하면 가지가 힘들어 해. 여기를 잡으라니까!”

하면서 덩굴을 지주대 쪽으로 옮겨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곧바로

“안 돼, 안 돼.”

하며 수박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식물은 더 이상 단순히 ‘텃밭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보면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 존재가 되었고,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싶은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애플수박 열매가 생기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관심은 더욱 커집니다.

매일 텃밭에 가서 수박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박이 점점 커져서 떨어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수박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교실로 가서 플라스틱 블록을 쌓아 수박 받침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식물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의 생각도 자란 것입니다.

 

단순히 ‘수박이 커졌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커진 수박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생각하고 해결 방법을 만들어 보는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유아 텃밭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유아 텃밭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기다림 끝에 만나는 수확은 아이에게 특별합니다

기다림 끝에 만나는 수확은 아이에게 특별합니다

당근을 수확할 때도 기다림의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당근을 뽑기 전까지 마트에서 보았던 당근을 생각합니다.

마트에 있는 당근은 크기도 일정하고 모양도 매끈하게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텃밭에서 직접 뽑은 당근은 아이들의 예상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작고 울퉁불퉁한 당근이 나오면 아이들은

“에개, 쪼꼬매.”

하며 실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직접 기다려 얻은 당근입니다.

 

깨끗하게 씻어 조금씩 잘라 냄새를 맡아보고 맛을 봅니다.

교사가

“어쩜 향긋하고 아삭하다. 아주 맛있는 걸? 먹어볼래?”

하고 먼저 긍정적으로 맛을 경험하도록 도와주면 당근을 좋아하지 않던 아이가 한 조각 먹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야, 당근 씨앗이 100밤 자면서 이렇게 맛있는 당근을 만들었네.”

100밤이라는 숫자가 실제 당근의 정확한 성장 기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는 씨앗에서 당근이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아이에게 ‘100밤’은 단순한 숫자라기보다 자신이 기다려 온 시간의 의미가 됩니다.

유아 텃밭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유아 텃밭에서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텃밭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도 쉽게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은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줍니다.

작았던 싹이 조금 커지고, 잎이 늘어나고, 줄기가 길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생깁니다.

 

금요일에 보았던 식물과 월요일에 만난 식물이 달라져 있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은 유아에게 추상적인 시간 개념을 구체적인 변화와 연결해 줍니다.

 

“기다렸더니 자랐어요.”

“지난번보다 커졌어요.”

“작은 수박이 생겼어요.”

“당근 싹이 나왔어요.”

아이들은 식물의 변화를 통해 자신이 보낸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이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돌보고, 살펴보고, 궁금해하고, 발견하고, 다시 기다리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2026.09.13 - [유아텃밭교육의 실제] - 유아 텃밭활동에서 교사의 말이 중요한 이유, 아이의 호기심을 키우는 질문

 

유아 텃밭활동에서 교사의 말이 중요한 이유, 아이의 호기심을 키우는 질문

유아 텃밭활동을 하다 보면 같은 텃밭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지나가면서도 상추와 고추의 변화를 살펴보고 말을 걸지만, 어떤

ssms7.com

 

식물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은 아이의 속도도 존중하는 일입니다

유아 텃밭교육에서 식물의 성장 속도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식물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성장 속도를 경험합니다.

어떤 식물은 빨리 자라고 어떤 식물은 천천히 자랍니다.

 

같은 작물이라도 크기가 다를 수 있고, 어떤 열매는 먼저 생기고 어떤 열매는 조금 늦게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질문하지 않고, 같은 속도로 관찰하지 않으며, 같은 순간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텃밭에서 식물의 성장을 기다려 주는 경험은 아이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왜 아직 못 했어?”

“왜 너는 이것을 몰라?”

라고 재촉하기보다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고 다음 변화를 기다려 주는 태도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자연이 가르쳐 주는 교육입니다

유아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로 “기다려야 해”라고 설명한다고 해서 기다림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텃밭에서는 자연이 직접 보여줍니다.

씨앗을 심고 기다립니다.

싹이 나기를 기다립니다.

잎이 자라기를 기다립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립니다.

작은 열매가 커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확합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식물을 돌보고 관찰하며 수많은 질문을 합니다.

“왜 아직 안 나왔어요?”

“씨가 죽은 건 아니에요?”

“어? 이렇게 컸네?”

“이 수박은 어디를 잡고 올라가요?”

“수박이 떨어지면 어떡해요?”

이 질문 하나하나가 식물의 성장과 함께 아이의 생각이 자라는 과정입니다.

 

유아 텃밭교육에서 기다림은 ‘참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으로만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생명은 각자의 속도로 자라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성장의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그래서 텃밭에서는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오늘 싹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고, 열매가 생각보다 작아도 괜찮습니다.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아가 보고, 어제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아직 변화가 없다면 한 번 더 기다려 보면 됩니다.

 

어쩌면 유아 텃밭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빨리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수확하기까지의 시간을 아이가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씨앗을 심은 날부터 수확하는 날까지 이어지는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연의 속도를 배우고, 생명을 돌보는 마음을 키우며, 작은 변화에도 기뻐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마트에서 당근이나 상추를 보았을 때,

‘이것도 누군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기다려서 자란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텃밭에서 보낸 기다림의 시간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교육이 되었을 것입니다.

2026.09.12 - [유아텃밭교육의 이해] - 유아 텃밭에서 오감으로 배우는 자연탐구, 교사가 주목해야 할 것들

 

유아 텃밭에서 오감으로 배우는 자연탐구, 교사가 주목해야 할 것들

유아 텃밭에서 오감으로 배우는 자연탐구, 교사가 주목해야 할 것들아이와 함께 텃밭에 나가 보면 어른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교사는 식물

ssms7.com